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노모토 키하치 (문단 편집) == 인물 == 고지식한 남자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만의 독특한 타격폼 조정 방법으로 '배트를 손이나 몸으로 휘두르지마라. 마음으로 휘둘러라'라는 이미지를 충실하고 실행했다. 또한 프리배팅 자체가 적었고 그 때문인지 시합에 들어가기 전까지 배트를 한 번도 휘두르지 않은 적도 자주 있었다. 어린 시절의 빈곤으로 고통받았던 경험으로 인해 에노모토는 "타율이 3할 미만으로 떨어지면 급여가 상승하지 않을 것이므로 할머니를 더 편하게 모실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어깨의 불필요한 힘이 너무 들어가 타격폼이 무너지고 더욱이 팬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행동을 받아 우울해졌다. 악순환의 반복으로 인해 슬럼프에 빠졌다. 기숙사에서 아라카와 히로시 등 와세다 동문들의 배팅 토론에서 그는 다양한 조언을 받았지만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일본도]]로 지푸라기를 베는 교육을 [[오 사다하루]]에게 부과했던 아라카와 히로시의 훈련법을 실은 에노모토가 먼저 공부하고 무술과 합기도를 타격이론에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역 시절, 에노모토의 초등학생 아들은 아버지가 집에서 일본도를 흔들며 연습하는 무서운 분위기의 훈련을 보고 겁을 먹은 건 이상한 게 아니었다. 안타나 홈런을 쳤어도 '제대로 된 타격이 아니다'라고 고민하고 범타로 물러날 때도 고민을 거듭했다. 무안타로 경기를 끝내는 날에는 배트를 쥐고 좌절하는 일도 많았다. 아라카와는 "에노모토는 너무 성실해서 그런지 긴장을 푸는 법을 몰랐다", 오리온스 시절 코치였던 [[요나미네 카나메]]는 "그(에노모토)는 야구에 대해 너무 진지했다. 좀 더 야구를 즐겼어야 했는데...:"라고 평한바 있다. 1958년 [[릿쿄대학]]을 졸업하고 1958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한 [[나가시마 시게오]]의 타격을 시범경기에서 목격하고 "이것은 자신보다 위"라고 통감하고 야구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에노모토는 억울한 나머지 나가시마가 1루에 출루하면 "스모에서 승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1959년 게임 전 타구가 팀 동료 야나기 토시오의 얼굴을 직격해 아래턱 골절상을 입고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을 때 에노모토는 얼굴은 창백해지고 떨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누가 에노모토를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당시의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은 부상당한 야나기보다 에노모토의 풀이 죽어 버리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통산 2,314안타는 역대 15 위, 통산 타율 .298은 4,000 타수 이상으로 역대 24위이다. 1,000안타를 날린 것은 무려 24세 9개월 때의 일이며,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스즈키 이치로]]도 넘지 못한 대기록이다. [[가와카미 데쓰하루]], [[야마우치 가즈히로]]에 이어 사상 3번째로 일본프로야구 2,000안타를 기록했다. 생전에 존경하는 선배와 라이벌로 3명을 꼽았는데 야마우치, [[이나오 가즈히사]], 그리고 [[장훈(야구선수)|장훈]]이었다. 에노모토의 타계 후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초청 연사로 초대된 것은 장훈이었다. 장훈은 "에노모토는 존경하는 선배이자 라이벌로서 야구는 움직이는 공을 치는 것이기 때문에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그러면 공의 속도를 이겨낼 수 없기에 보통은 반동을 쓰면서 [[레그킥]]도 방법 중 하나. 하지만 에노모토 씨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테이크백도 없었다"라고 술회했다. 끄떡하지 않는 정밀 타격 폼에 정확한 미트 힘. 그리고 밀리 단위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 선구안이다. 에노모토의 아들은 아버지의 사후 "저는 집 밖에서 아버지의 행동을 알지 못합니다. 집에 계시는 아버지는 매우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일본 [[위키피디아]]에는 다양하게 아버지에 대해 쓰여져 있습니다만, 전부가 사실은 아닙니다. 금욕하시고, 여러모로 서투른 분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갈등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라고 술회했다. 덧붙여서 "인터넷에 아버지의 여러 일화가 실리고 나서 사인을 요구하는 팬들의 색종이 편지가 집에 오면 아버지는 "나는 은퇴 후가 더 인기가 있구나"라고 말하시고 정성스럽게 사인을 반환했습니다. 아버지의 손자가 지금 3명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굉장한 야구 선수 였다는 것을 손자들도 어딘지 모르게 알았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뒤를 쫓아가는 선수가 될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